공즉시색으로 디자인하기
칠십 다섯 번째, 행간의 이미지
“공(空)의 세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예술적 행위는 공명의 세계에 관계한다. 화가가 그리는 그림이나 도공이 만드는 그릇은 소위 원본이라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거기서 작가가 재현하는 것은 비록 대상을 정확히 묘사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설명할 수 없는 작가 고유의 공명을 담는 행위다(이경률)”
불교에서 공(空)과 색(色)은 하나의 묶음이다. 비울수록 채워지고, 채울수록 비워지는 아리송한 원리를 따른다. 이 원리의 핵심은 무엇이 공이냐, 색이냐 하는 분별이 아니다. 무엇을 비움으로써 어떤 것을 채우고자 했는지, 무엇을 채움으로써 어떤 것을 비우고자 했는지의 맥락을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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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은 공으로 색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단순해질수록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명확해진다. 이는 그저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한다고 달성되지 않는다. 비움으로써 생겨난 공간의 결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공명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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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스튜디오 Center의 <The United Sodas of America>는 다양성(Diversity)이 미국 사회를 통합하는 진정한 힘이라는 주제를 던지고자 미니멀리즘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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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다 종류에 따라 각 캔의 색상을 나누는 일 외로, 이 작업물에서 다양성을 표현하는 다른 요소는 없다. 단지 내용물의 정보를 전하는 작은 식별자만 존재할 뿐이며, 원료 이미지나 부가적인 그래픽 요소는 모두 배제되었다. 이로 인해 통합성(Unity)의 맥락이 두드러진다. 즉 다양성의 이미지를 12개의 색상 팔레트만으로 최소화하여 표현하는 대신, 전체로서 보여지는 통합의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 것이다. 여기에 ‘United Sodas of America’라는 슬로건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한마디로 비움의 맥락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화두(다양성의 통합적 힘)의 색깔이 분명해진 작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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