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와 우리의 관계
칠십 여덜 번째, 행간의 이미지
누구나 그렇겠지만 디자인 작업 시 아트보드 위에 개체 간 위치를 조정할 때 처음엔 그래픽 툴이 제시하는 데이터 값에 따라 정렬합니다. 이 수치는 컴퓨터가 좌표 평면의 값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산출된 개체의 속성값으로서, 사람의 눈으로는 하기 어려운 시각 보정을 도와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로 정렬했음에도 눈으로 보기 좋지 않은 모양새를 갖게 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런 경우 내 눈의 감각을 믿고 임의로 개체의 위치를 다시 재조정합니다. 보기에는 눈에 거슬리지 않고 전반적으로 정리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저 위의 디지털 값은 여전히 현 위치가 잘못된 거라며 나를 압박합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과 눈에 보이는 직관이 서로 맞붙는 것입니다. 물론 무엇을 믿을지는 작업자의 최종 선택에 달렸고, 대게 우리는 보이는 대로 믿는 경향이 있으므로 직관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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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디지털의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데이터는 현실의 우연성, 인식의 임의성을 초월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거울이자 우리 자신의 관습을 넘어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성문법으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직관대로만 흘러가게 놔두기도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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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딜레마는 데이터와 우리의 관계에 대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데이터에 관해 무언가를 성찰하고 이를 경유하여 우리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어떻게 성취할지에 대한 작은 성찰을 함의합니다. 올해 [행간의 이미지]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로 '데이터의 이미지'를 다룰 예정입니다. 이 테마 안에는 디지털 전환의 풍광 속에서 아날로그적 방식의 데이터로 가장 인간적인 만남을 실천한 프로젝트를 소개하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데이터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이 무엇인지 탐구한 프로젝트를 다룰 예정입니다. 즉 데이터와 우리의 관계에 디자인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좌표를 찍어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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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드리븐이 유령처럼 세계를 배회하며 이미 그 유령은 자유의지의 복면을 쓰고 일상적인 삶 뒤에서 우리의 선택과 경험의 범위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일까요. 아니면 이 유령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함께 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기 위한 요량일까요. 여하간 올해는 좀 더 데이터와 친해져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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