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뉘앙스
칠십 아홉 번째, 행간의 이미지
“아직 변치 않고 싱싱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해서 나는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그 싱싱한 죽음 때문에 더욱 싱싱해진 삶에 감사한다(황동규)”
⠀
말할 수 없는 것에 침묵하라는 청년 비트겐슈타인도 후일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말하는 노력도 하나의 언어놀이라 보았다. 언어놀이 안에서는 말해질 수 없는 것도 암묵적 규칙이나 침묵의 뉘앙스를 통해 서로 간 소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진정한 사진이란 말해질 수 없는 이야기를 포착한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사진들은, 대단히 넓고 커다란 텅빈 스케일을 통해 풍경에 깊게 서린 이야기의 뉘앙스를 전하고 있다.
⠀
인간의 희노애락은 작은 미물의 사정으로 만들어 버리는, 땅과 하늘이 맞닿은 육중한 그릇이 품은 이야기. 황동규 시인이 풍장에서 맛본 것처럼, 숱한 죽음과 명징한 탄생 즉 죽음을 싱싱하게 기억함으로써 더욱 말근 생(生)의 지문이 남긴 이야기를 바라 본다. 더불어 영겁의 순환을 거듭하는 땅과 하늘 사이에 인간이 스스로를 탐했던 고투의 흔적, 두 발로 서고자 했던 생존의 이야기가 속삭인다.
⠀
단지 압도적인 물리적 크기 앞에서 겸허해진 것이 아니다. 저 풍경이 침묵함으로써 침전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 온 몸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울림과 땅의 떨림이 만들어낸 뉘앙스가 나를 온전히 감싸 앉는다.
⠀
이렇듯 미지의 뉘앙스를 포착한 사진, 이것이 전달하는 삶과 죽음이 맞닿은 간격 그리고 그 간격이 지닌 모호한 아름다움은 이 보잘 것 없는 육신의 생을 흥미진진 하게 만든다.
⠀
#행간의이미지 #땅과하늘이간직한뉘앙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