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영원과 순간


‘옷은 결코 천박한 것이 아니다. 옷은 언제나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고 그 무언가는 우리의 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있다(제임스 레이버)’

메타버스란 개념이 현실계와 가상계를 가로지르며 돈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법처럼 회자된다.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견고한 벽이 ‘증강’이라는 방식을 통해 허물어진다. 경계가 사라진 대지 위에 온갖 종류의 재화가 쏟아지고 욕망의 실타래가 풀어지기 시작한다.

사실 아바타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가상의 자아 대체물을 세우는 일은 천지개벽한 사건이라 할 수도 없다. 라캉이 예리하게 상상한 대로, 자아라는 것 자체가 가상계와 현실계를 매개하는 아바타이기 때문이다. 물론 메타버스가 유령처럼 떠도는 유행일지 일상을 차근히 스미는 신세계일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자본이 우리의 인생을 비집고 파고드는 방식이 하나 더 생겼다는 점이다.



특히 브랜드가 환상을 상품화하는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제품과 서비스를 매개로 이상화된 이미지(주로 인격체의 이미지)를 소비했다면, 이제는 아예 사람들이 브랜드적인 인격체와 동일화되어 브랜드가 만든 세계 속에서 실감 나는 경험을 이어갈 것이다. 즉 브랜드 경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매개하지 않고도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경로들을 통해 체현될 수 있다. 직설적으로 말해 메타버스적인 일상 속에서는 우리의 모든 것이 돈이 된다.

메타버스라는 황금알을 낳는 세계를 패션 브랜드가 선두에 나서 가장 빠르게 구현하고 있다. 사람들이 환상을 지속적으로 품을 수 있도록 새로운 이미지와 욕망을 만드는 것이 패션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물론 패션은 여전히 가볍고 위태롭다. 증강현실 속에서도 패션이 보여주는 것은 일시적인 키치들의 조악한 조합이다. 그러나 이토록 한없이 가볍고 일회적이기 때문에 패션은 영원히 새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자아를 허물고 새로운 자아로 대체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나아가 패션은 세계 그 자체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이로 인해 패션의 일시성은 더 강화되고 패션의 영원성은 더 영속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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