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데이터



반영적 인포그래픽에서 창조적 인포그래픽으로

지난 리터러시에서 인포그래픽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것이 인포그래픽의 기본 개념이라면 그 안에는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기본 프레임이 담겨 있다는 것, 그리하여 인포그래픽은 데이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기능은 물론 당대 사람들의 에피스테메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돋보기 역할을 한다는 것. 오늘 소개하는 프로젝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즉 시대의 투명한 거울을 넘어, 창조적인 자기-글쓰기이자 농도 짙은 소통의 매개로서의 인포그래픽을 펼친 작업에 관한 것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Dear Data>로 두 명의 디자이너가 매주 하나의 공통 테마를 지정하여 이를 인포그래픽으로 시각화한 후, 자신의 결과물을 편지로 1년간 교환하는 프로젝트다. 대서양 반대편에 사는 두 디자이너 조르자 루피(Giorgia Lupi)와 스테파니 포사베치(Stefanie Posavec)는 프로젝트 전에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인포그래픽 디자인이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데이터를 다루게 하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더 깊은 수준으로 연결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이 펼친 인포그래픽 작업의 큰 차별성은 디지털 그래픽이 아닌 아날로그 손으로 직접 그려낸 시각 데이터 산출을 제작의 원칙으로 둔다는 점이다. 그리고 작업의 대상은 공식적인 지식이나 외부 정보가 아닌, 철저히 개인적이고 주변적 일상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다. 디자인 형식은 한 장의 엽서를 기본으로 하고, 앞면에는 주간 데이터에 대한 고유한 인포그래픽 드로잉이 있고 뒷면에는 이를 구성하는 기본 정보 단위의 설명과 해석을 담았다. 이런 조건으로 축적된 인포그래픽 엽서들은 그 어떤 레퍼런스나 데이터 서지에서도 찾기 어려운 가장 개인적인 그러나 가장 고유한 모습의 결과물로 채워져 나갔다. 동시에 그 어떤 것에도 비할 수 없는 공감대 깊은 커뮤니케이션이 두 디자이너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주고받은 자세한 기록과 설명은 동 프로젝트 사이트(바로가기︎︎︎)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들이 나눈 데이터의 구체적 내용이 아닌, 프로젝트에서 발견된 몇 가지 유의미한 지점들. 즉 창조적인 글쓰기 플랫폼이자 밀도 높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인포그래픽 쓰임새와 그 의미에 대해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첫째, 발에 치이고 손에 긁히는 데이터

그들이 그린 데이터는 알고리즘, 크롤링 기술로 수집된 데이터가 아니다. 철저히 자신의 일상 안에서 부단히 발걸음을 옮겨 다니며 직접 눈으로 부딪히고 몸으로 느끼며 발견할 수 있는 데이터를 대상으로 한다. 주변의 소리, 사적인 기념일이나 식습관에 대한 것. 때로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서도 인포그래픽으로 그려낸다. 이는 데이터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새로운 방식과 관점을 만들어 낸다. 즉 한 개인에 대한 데이터를 결코 정형화된 인구학적 단위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형식으로 구성하지 않는다. 자기 주변에서 감각되고 수용되는 정보 및 기호들을 채굴하며, 사소하지만 그 개인의 인생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 내러티브를 형성한다. 그 과정을 통해 차갑고 거리감이 있는 데이터가 아닌,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데이터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데이터-드라마

고정된 패턴이나 종래 합의된 시각적 장치로는 우연히 발에 치이고 사적인 손에 긁히는 데이터들을 표현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사적인 감정과 우연한 주변적 사건들, 그러나 그 개인에게 있어 어쩌면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데이터가 발견되는 그때마다 디자인 표현의 기준점을 새롭게 선택하고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이 프로젝트의 창의성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자신만의 시선과 발걸음으로 채굴된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함은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 그러한 능동적 해석점들이 표현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각 표현을 창안해야 한다. 이렇게 작업된 인포그래픽은 주어진 데이터의 성격이나 내용에 종속된 수동적 디자인이 아니라, 개인적인 의미의 단초들 그리고 자유롭게 뻗어가는 삶의 그림들이 조화롭게 그려진 하나의 데이터 드라마가 된다. 그들은 데이터 드라마를 통해 복잡하고 모호한 일상에 자신만의 질서를 부여한다. 자신의 습관을 새롭게 정의하고 발견하며 이름을 짓고, 그것의 패턴과 움직임을 읽어낸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삶을 더욱 디테일하게 살아가게 하며, 스스로가 잘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고 성장과 변화를 위한 새로운 계기를 발견한다.


셋째, 마디 말보다 농일한 대화의 창으로서 인포그래픽

개인적 삶에 숨겨진 윤곽을 그려내고 그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깊게 넓히는 아날로그 인포그래픽은 당연히 나와 너를 잇는 효과적인 대화법이 될 수 있다. 어떤 백 마디의 표현보다 더 명징하게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전할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개개인의 고유한 일상적 풍경과 흐름을 연상하는 이미지도 함께 보여준다. 그 이미지는 단지 현재에 대한 보고(Report)에 그치지 않고, 각자의 삶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내일로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에 대한 풍성한 시각적 패턴과 유의미한 성찰(Review)을 담아낸다. 그리고 서로가 그려낸 성찰적 인포그래픽에서 영감을 받아 다시금 자신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긍정적 계기로 삼기도 한다. 루피와 포사베치는 이를 1년 동안 주고받음으로써 그 누구보다도 서로에 대한 연결 의식을 깊은 수준에서 가질 수 있었으며,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 , 눈으로 데이터의 주도권을 되찾다

흔히 인포그래픽은 복잡하고 역동적인 사태에 계산적인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는 디자인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쌓아 올린 인포그래픽 디자인史를 잠시라도 훑어보면, 개별 디자인에서의 규칙성 대비 시대적 변화와 장소에 따라 인포그래픽의 모습은 자유롭게 진화해 왔다. 주로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규칙성의 변화에 따르기도 했으며, 때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인포그래픽 결과물이 우리의 망막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서 중요한 의미점을 가진 인포그래픽 케이스는 단순히 객관적 데이터를 선명하게 그려내는 작업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주관적이지만 창의적 시선을 다른 이들과 함께 공감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역할을 멋지게 수행한다.

빅데이터 알고리즘과 실시간적 크롤링 기술이 자동적으로 규칙적인 디자인 좌표를 만들어내는 세상에서 이러한 창의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으로서 인포그래픽을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루피와 포사베치, 탁월한 두 디자이너가 해낸 아날로그 인포그래픽 펜팔 프로젝트는 다시금 데이터의 주도권을 우리가 가진 두 발, 두 손, 두 눈으로 되돌려 놓았다. 컴퓨터 인공지능이 바라보는 세상의 데이터, 딱딱한 프레임에서 잠시 벗어나 우리 자신의 몸으로 채굴하는 가장 개인화된 그러나 가장 공감대 깊은 데이터-드라마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루피와 포사베치는 가장 인간적인 대화로 이끄는 인포그래픽이 무엇인지 증명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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