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줄타기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최수철)”

러시아 사진작가 Dmitri Pryakhin이 13년 동안 찍은 이 포토레이트 연작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폭열을 담아낸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들이 제 성을 못 이겨 비틀거린다. 극도로 차오른 감정의 열기가 사각 프레임 전체를 가득 메운다. 어떤 설명도, 각주, 판단 그 어느 것도 한 줌의 재를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설적으로 공허한 감각을 전한다. 이렇게 하여 이 사진들은 제목 그대로 마음의 빈터(Empty Place)가 된다.



매섭게 작열하는 감정의 움직임에 따라 클로즈업과 도치, 반복 등의 의미 없는 콜라주가 때론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체로 이러한 작위성은, 우리가 자신의 본원적 감정에 행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닮아 있다. 감정의 맨얼굴을 가리기 위해 위선적이거나 위악적인 것을 택하며 발현되는 과장된 표정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이 사진들의 작위적인 구도로 재현된다.



방향 감각을 잃은 감정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쏟아진다. 그런데 가장 전달하고 싶은 감정은 결코 글자를 가지지 않는다. 글자로 미루어 판단할 수 없지만 감정의 입안에는 무언가를 분명히 머금고 있다. 이를 토해내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것은 내면의 성벽을 허물고 다음으로 나가게 하는 여지를 준다. 이 사진 연작은 글자로 가늠하기 힘든 어떤 감정 앞에서 우리가 벌이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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