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의 새로운 파트너


“인간과 기계의 지능을 서로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다른 종류의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중략) 코헨과 아론 사례를 살폈다면, 이제 상하 관계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을 인간과 평등한 창작 주체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 창작자에게 주어진 역할도 명확해졌습니다. 인공지능을 서로 연결하고 조합하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를 조율하는 지휘자처럼 말이죠(최선주)”


영상에서 소개하고 있는 디자이너 니콜라이 이로노프(Nikolay Ironov)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인 스튜디오 Lebedev가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전하는 이 영상과 다르게 나는 니콜라이의 결과물이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고 보았다. 결과물 자체로 평가한다면 이미 40년 전에 추상화가이자 프로그래머인 헤럴드 코헨이 설계한 AI 예술 인공지능 아론(Aron)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론이 미술의 추상화를 모방한 것이라는 명쾌한 목적성이 있었다면, 니콜라이는 이슈를 생산하기 위해 의도적인 은폐와 폭로라는 저급 미디어의 전략을 취한 것 같아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



그들의 바이럴이 성공했는지는 무관하게 인공지능과 디자인의 연결고리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니콜라이의 결과물이 좋고 나쁨을 떠나, 수행적으로 볼 때 디자이너에 필적하는 결과물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 디자이너의 역할을 나눠 갖게 될 것은 굳이 알파고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미래에 현실화되는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이미 현실감 있는 공포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그저 공포와 충격에 휩싸이기만 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어느샌가 인공지능 디자이너가 우리의 작업실에 유익한 동료로서 함께 일하게 될 것이고, 그들과 자연스럽게 협업하는 일이 익숙해지는 날이 언젠가 도래하게 될 것이기에. 그래서 공포와 충격 앞에서 막연한 감정을 가지는 일보다 기계-인간의 협업 풍경에서 우리 자신이 더 나은 방향을 위해 무엇을 선택하고 실행해 나갈 것인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사실 우리는 기존에도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알고리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구글과 핀터레스트에서 추천하는 레퍼런스를 찾으며 자신이 원하는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데이터 검색 알고리즘 사이트를 배회하고 있지 않는가. 이것 또한 인공지능이 최소한으로 관여하는 방식으로 인간과 컴퓨터가 함께 이루어가고 있는 ‘디자인’ 작업이 아닐까?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인공지능 디자이너로 인해 종속과 배제의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그와 함께 만들어가게 될 새로운 창조적 행위와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이 더 부풀어 오른다.

인공지능 디자이너는 검색 키워드에 따라 최적의 레퍼런스를 보여주는 알고리즘을 넘어, 창조성의 영역에서 실현 가능한 무수한 시안들을 내게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기반으로 종래보다 더 세밀한 방식으로 그리고 더 넓은 관점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기대일 뿐.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좋은 디자인을 결정하는 기준은 기존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며,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결과물은 아마도 알고리즘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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