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가 아닌 WHAT의 문제
육십 아홉번째 행간의 이미지
"글자와 그림은 기술적으로 쉽게 그릴 수 있다. 보통 모양은 매우 심플하고 기초적인데,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면 내가 드로잉을 잘못한 게 아니라, 알맞은 대상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그리는지 명확히 인지한다는 것은 까다롭고 중요한 문제다(사이러스 하이스미스)"
이따금 화려한 표현이나 정교한 기술이 부족하다는 핑계를 스스로 하곤 하는데, 실상은 진짜로 다루어야 할 대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이라 꾸짖는 작업물들이 있다. 이 작업물들의 빼어남은 복잡한 무드, 유려하고 예리한 선, 이중 삼중 구조로 배치된 그래픽 요소들에서 오지 않는다. 이러한 갖가지 수식들이 단단해질 수 있는 기본적인 출발점, 즉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본연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가장 심플한 형태로 담아낸 기본 표현에서 온다. 하이스미스가 말한 대로 언뜻 대게 단순하고 기초적인 도형이지만, 그것은 표현하는 대상에 관해 거의 모든 의미를 발신하고 있다.
Beetroot Design이 작업한 ΕΛΕΦΑΣ Wine 패키지 디자인은 대상의 의미와 표현을 간단하면서 매끄럽게 통일시킨 작업물이다. 황금비율이라는 뜻인 그리스 알파벳 ‘Φ’으로 코끼리의 콧구멍을 표현하고, 회색 컬러와 길쭉한 병 모양은 코끼리의 모습을 매우 선명하게 표현한다. 제품이 지향하는 질료적 특징인 ’균형 잡힌 맛’과 황금비율(Φ)의 메시지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 캐릭터성을 강하게 부여하는 코끼리의 모습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매끄럽게 압축시킨 작업물.
#결국회화로리턴